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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는 무엇인가?
진리탐구십일조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특별히 모세율법이 주어지기 이전에 십일조를 드린 것을 아주 아주 많이 울궈 먹습니다. 과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십일조의 조상이기도 한지 알아보았습니다
온전한 십일조(4)
- 아브람이 멜리세덱에게 드린 십일조의 의미 -
들어가는 말
십일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성경구절은 뭐니뭐니해도 말3:9-10이다. 그 다음에 빠질 수 없는 본문이 바로 아브람이 십일조를 드린 사건이다. 특히, 아브람은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에 인물이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말인즉, 율법이전에 믿음의 조상 아브람이 십일조를 드렸으니까 당연히 우리도 그 믿음을 본받아 십일조를 드려여 하지 않는가? 이런 식이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아브라함이 ‘아브람’이었던 시절, 그가 멜기세덱에게 드린 십일조가 오늘 신약교회 성도인 우리의 모범이 될 수 있는가? 없는가? 만약 그가 우리의 모범이라면, 우리는 과연 온전히 아브람을 잘 따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말은 아브람이 했던 그대로 우리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하나만 강조하고 다른 것은 버린다면 그것은 온전한 모범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이다. 내 논에 물대기 식으로 성경을 적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할 때, 나에게 좋은 것은 취하고 나에게 해가 되고 나쁜 것은 버리는 행위는 하나님을 노엽게 한다.
자. 이제 아브람이 드린 십일조를 생각해 보자. 아브람은 십일조를 누구에게 드렸는가? 그가 드린 십일조는 어떤 십일조였는가? 그가 드린 십일조의 의미는 무엇인가? 즉 어떤 의미로 드린 것인가?
본론.
1. 문맥을 정리함.
먼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리기까지 그 전후 사건을 정리해 보자. 성경을 읽을 때는 항상 앞 뒤 문맥을 잘 파악해야 한다. 이 일이 있기 전에 앞에는 무슨 일이 있었고, 이 사건은 다음 사건과 어떤 관련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지 그 본문이 정말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알 수 있다.
1.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셨고, 아브람은 가나안에 도착(12:1-9)
2.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 애굽에 내려갔다가 돌아옴(12:10-20)
3. 소유가 많아진 아브람과 그의 조카 롯이 헤어지기로 함(13:1-13)
4. 상대적으로 척박한 곳을 선택한 아브람을 하나님이 복 주실 것을 약속하심(13:14-18)
5. 가나안 땅에 연합전쟁이 발발하였고, 이 전쟁에서 아브람의 조카 롯이 잡혀감(14:1-12)
6. 아브람이 사병(私兵)을 데리고 급습하여 적을 파하고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조카 롯과 부며와 인민을 다 찾아 옴(14:13-16)
7.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아브람을 두 왕이 마중을 나왔고, 이 중에 아브람은 살렘 왕 멜리기섹에게 십일조를 드림(14:17-24)
8.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그의 후사를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과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을 약속하심(15:1-11)
9. 이 약속은 애굽에서 종살이 한 후 400년 후에 이루어 질 것임을 예언하심(15:12-21) 위에서 보았던 것처럼 우리 본문은 아브람이 조카 롯과 헤어진 후에 전쟁이 발발한 사건속에서 아브람이 취했던 행동이다. 조카 롯이 선택한 곳은 기름진 땅이었고, 아브람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했다. 이런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동서남북의 가나안 땅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전쟁이 있었고, 그 일 후에 다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자손와 큰 민족과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재차 하셨다. 13장의 약속과 15장의 약속 사이에 전쟁이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이 사건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다. 세상사는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 세상사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중심으로 해석해야 한다. 세상은 교회를 위하여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전쟁도 아브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속에서 일어난 것이다. 조카 롯이 잡혀가고 아브람은 그를 구하기 위해 전쟁에 끼여들었다. 그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과연 아브람에게 무엇을 요구하시고, 무엇을 가르치시고자 하신 것일까? 이것을 우리가 올바르게 알 때에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드린 십일조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 전쟁 발발을 통한 아브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목적)
아브람과 그의 조카 롯이 헤어진 후에 갑작스럽게 가나안 땅에 두 연합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있었다. 모세는 이 사건을 대서특필(大書特筆)로 보도하고 있다. 두 연합국가들 사이의 전쟁은 분명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 곧 세상일이다. 위에서 말했지만 세상일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난다. 이 일은 아브람과 관련이 있다.
침략한 연합국은 4개국이다. 시날 왕 아므라멜, 엘라살 왕 아리옥, 엘람 왕 그돌라오멜, 고임왕 디달이다. 침략당한 가나안 연합국은 5개국이다. 소돔 왕 베라, 고모라 왕 비르사, 아드마 왕 시납, 스보임 왕 세메벨, 소알 왕 벨라 등이다. 이 전쟁에서 가나안 연합국은 대패한다. 4개 연합국은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고 이 와중에 소돔성에 살고 있던 아브람의 조카 롯도 포로로 잡히고 그의 재물도 노략질 당한 것이다.
함께 포로로 잡혀 간 사람 중에 도망친 사람이 아브람에게 와서 사건의 전말을 전해주었다. 조카 롯이 사로잡혔다는 말을 듣고 아브람은 사병(私兵) 318명을 데리고 밤에 4개 연합국을 친다. 가나안 5개 연합군대가 이기지 못했던 적들을 아브람의 사병들이 쳐서 파하고 다메섹 왼편 ‘호바’라는 곳까지 쫓아가서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조카 롯과 함께 포로되었던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서 돌아온다.
이 때 아브람이 4개 연합국을 쳐서 이기고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두 왕이 마중을 나온 것이다. 한 왕은 소돔 국가의 왕 베라였고, 다른 왕은 살렘 국가의 멜리세덱이었다.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아마도 이 떡과 포도주는 전쟁 하느라 먹지 못한 아브람과 그 일행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또 승전을 축하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풀어야 할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소돔 왕이 마중 나온 것은 이해가 됩니다. 자기 대신 대적을 물리쳐 주고 포로된 자기 백성과 재물을 도로 찾아 왔기 때문에 소돔 왕은 당연히 마중을 나와야지요. 그러나 살렘 왕 멜기세덱은 갑자기 등장한 인물입니다. 살렘 왕은 전쟁에 참여하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빼앗긴 백성과 재물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아브람을 마중 나왔고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승전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이 살렘 왕 멜기세덱은 과연 누구이며 그는 무엇 때문에 아브람을 마중 나왔을까?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멜기세덱은 사실 신비로운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실제 역사적인 인물이다. 당시의 살렘, 즉 예루살렘의 왕이다. 당시의 왕은 제사장의 역할도 담당하였다. 고대사회는 왕이 제사장이요 제사장이 곧 왕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알기로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은 아브람인데, 아브람 외에 또 다르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있었는가, 그것도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부인할 수 없이 멜기세덱은 아브람이 믿는 그 하나님의 제사장이 분명하다. 멜기세덱에 대하여 신약성경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7:1-3).
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2.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이처럼 멜기세덱은 역사적인 인물이면서도 신비로운 인물이다. 하지만 본문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가 누구냐가 아니라 그가 왜 아브람을 마중 나왔느냐이다. 창14:19-20을 읽어 보자.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마중나온 목적은 첫째, 천지의 주재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복을 빌어주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전쟁에서 승리를 주신 분이 바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심을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사실 4개 연합국을 5개 연합국이 이기지 못했다. 그런데 아브람의 318명의 사병이 이겼다. 전쟁사에서 적은 군사가 많은 군사를 이긴 경우는 많이 있다. 그러나 아브람이 전쟁에서 이긴 것은 아브람의 군사들이 아주 용맹하고 또 전술전략이 좋아서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대적을 아브람의 손에 붙히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 대적을 이기게 해 주셨기 때문에 아브람은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멜기세덱은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아브람을 찾아 온 것이다. 아브람의 승리는 사실은 하나님의 승리인 것이다.
이 사실을 통해서 아브람은 하나님은 과연 천지의 주재이시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심을 더욱 확실히 믿게 되었다. 정말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일을 당신의 뜻대로 하실 수 있는 주권자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하나님은 전에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수 있다는 것을 아브람은 믿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동서남북의 땅을 자기에게 주며, 그의 자손을 땅의 티끌과 같이, 밤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것이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진정 아브람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이것을 선포하기 위해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이 온 것이며, 또 크게는 이 사실을 가르키기 위해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3.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림
멜기세덱의 선언을 통하여 아브람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일을 인하여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멜기세덱의 방문과 가르침이 없었다면 아마도 아브람은 자칫 이 전쟁에서 승리가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승리한 것으로 자부했을 것이다. [바로 왕에게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던 아브람의 경력으로 미루어 볼 때 충분히 그럴 소지가 있다]이런 그에게 멜기세덱은 철저히 그 전쟁이 하나님의 승리였음을 일깨워 준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아브람이 드러내었던 태도와 행동은 무엇인가? 그가 전리품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어떤 의미로 드렸는지 이제야 알게 된다. 아브람이 드린 십일조는 “이 전쟁의 승리자는 하나님이시다”는 고백이었다. 그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분은 아브람 자신이 아니라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였던 표시가 바로 십일조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이시며 진정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아브람의 신앙고백이 바로 십일조였던 것이다.
이 사실은 소돔왕과 아브람 사이의 대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소돔 왕은 아브람에게 “사람은 내게 돌려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고 했다. 다시 말해 자기 성의 포로된 백성은 다 돌려보내고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은 다 아브람이 가지라고 한 것이다. 이 때 아브람은 이렇게 말한다. 22절.
22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23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23절 ‘네 말’은 소돔 왕의 말이다. 그가 하는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즉, 아브람이 복을 얻게 된 것은 소돔 왕이었다고 말하게 될까 두려워서 아브람은 소돔 왕에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 신발 한 짝이라도 가지지 않겠노라고 말한다. 만약 소돔 왕의 말대로 아브람이 그의 소유를 가지고 갔다면, 그는 소돔 왕의 덕택으로 부를 얻게 되었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아브람은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자기를 복되게 하실 것임을 천명한다.
4. 아브람의 십일조가 우리의 모범이 되는가?
법정적 십일조, 즉 모세 율법을 통해서 십일조를 하라는 명령이 주어지기 전에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드린 이 십일조가 오늘날 우리의 십일조의 모범이 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아브람이 십일조를 드렸기 때문에 우리도 마땅히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 문제이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너무 많다.
첫째, 아브람이 드린 십일조는 “소산의 십일조”가 아니라 전쟁에서 승리를 통해서 얻은 “전리품의 십일조”였다. 아브람은 평소에 농사를 지은 것이나 우양(牛羊)의 목축을 통해서 얻은 십일조를 드린 것이 아니라 단 한 번 전쟁에서 이긴 전리품의 십일조를 드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경우 아브람의 모범을 우리들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수입(예:월급) 외에 다른 방법으로 얻은 수입에서 십일조를 내야 한다는 것으로 적용해 볼까? 우습지도 않다. 그러므로 이것은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
둘째, 아브람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후 나머지를 자기가 가진 것이 아니라 소돔 왕에게 다 주었다는 사실이다. 단지 318명의 사병과 동맹자들의 분깃을 받아 그들에게 나누어주고 아브람은 전리품 중에서 하나라도 차지하지 않았다.
23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24 오직 소년들의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취할 것이니라
그렇다면, 이 경우 아브람을 그대로 따른다면, 우리도 십일조를 드리고 나머지 십의 구를 하나도 취하지 말아야 한다.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가? 실제로 아브람의 십일조를 모범으로 강조하는 사람치고 이대로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이는 하나만 취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것이다. 아브람이 십일조 한 것만 강조하고 십의 구를 소돔 왕에게 준 것은 살피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안전인수격 해석이고 적용이다. 성경을 자기에게 이롭도록 해석하고 적용해서는 안 된다.
세 번째, 아브람은 평소에 십일조를 드린 것이 아니라 오직 한 번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다. 아브람이 이 사건 이후 계속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 제사장에게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을 명하지 않았다. 또 히브리서가 가르쳐 주는 대로 멜기세덱은 단 한 번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였다. 그 처음과 그 마지막이 어떠했는지 우리는 모른다. 아브람의 십일조는 단회적 사건이지 계속적으로 드린 사건이 아님을 알아야 하겠다. 다시 말해,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드린 십일조는 멜기세덱의 생계비를 위해 드린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드린 십일조였다는 것을 다시 기억하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아브람이 드린 십일조는 흔히 말하는 “축복을 받기 위한 십일조”가 아니었다. 멜기세덱이 아브람에게 축복을 주는 조건으로 십일조를 요구하지 않았다. 추호도 축복의 수단으로 십일조를 드린 것이 아니다. 오직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이 이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다 주셨고, 자기와 조카와 재물을 획득하게 하셨다는 것에 대한 신앙고백의 표시로서 드린 것이었다.
그러므로 본문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아브람이 십일조 했으니까 우리도 십일조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아도 억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우리들의 남은 소유도 이방인들에게 다 주어야 한다고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브람의 십일조는 단회적(오직 한 번!) 사건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신앙고백의 표식이고 하나님의 약속-자손, 땅, 복-에 대한 확실성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을 가진 것이기에 우리들의 모범이 될 수 없다.
5. 본문의 근본적인 중심사상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이 사건을 우리도 아브람처럼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은 그 해석자의 무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가 이 본문의 근본적인 중심사상을 생각해 본다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구약자체에서 이 사건은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본문이 신약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살피는 일이다.
첫째로, 구약자체에서 볼 때, 아브람은 그 시대에 있어서 세상을 구원한 구원자였고 나아가 자기 백성을 이 세상으로부터 건져내는 영원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이 아브람으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가나안 여러 왕들은 전쟁에서 대패했을 때 아브람 덕분으로 모든 것을 다시 얻을 수 있었다. 아브람은 그 시대에 있어서 세상을 구원한 사람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브람은 세상을 구원하는 중보자로서의 직임을 감당한 것이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오늘 우리 시대의 교회는 세상을 구원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세상은 교회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 교회는 참된 구원의 길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하고, 세상은 교회가 보여주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만나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다.
둘째로,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는 해석원리에서 신약은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히브리서 7장은 아브람이 십일조를 드린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 주제는 우리가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는 레위지파보다 우월한 제사장으로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임을 밝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밝히고 있다.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릴 때, 레위 지파도 그 허리에서 함께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셈이 된다. 그러므로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은 멜기세덱보다 탁월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다. 따라서 레위 지파 제사장보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더욱 탁월하다는 것이다. 히브리서는 이 본문을 우리더러 십일조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우월함,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증거하는 일에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가는 말.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하면서 오늘 강의를 마치자.
1. 롯과 헤어진 후 일어난 전쟁은 아브람에게 특별한 것을 가르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2. 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왕이자 제사장인 멜기세덱을 보내어 그 전쟁을 승리하게 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선언하게 하신다.
3. 결국 아브람은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시오 지극히 높으신 분”임을 깨닫게 되고, 그 신앙고백의 표시로 드린 것이 바로 “십일조”였다.
4. 아브람이 드린 십일조는 토지 소산물의 십일조가 아니라 전리품의 십일조로서 우리의 모범이 될 수 없다.
5. 아브람은 그 이후 계속 멜기세덱의 생계비를 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고, 이 사건은 오직 단 한 번 있었던 단회적 사건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계속적으로 드릴 십일조의 모범이 되지 못한다.
6. 아브람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후 나머지를 자기가 취한 것이 아니라 모두 소돔 왕에게 돌려주었다. 이 점에서도 우리의 모범이 될 수 없다.
7. 아브람은 축복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십일조를 드린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 자기에게 하신 약속을 받드시 이루실 수 있는 천지의 대주재이심을 확인하고 그 일에 감사하여 드린 것이다.
8. 신약에서 이 사건은 레위 지파 제사장보다 더욱 탁월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증거하는 본문으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십일조에 대한 우리의 모범으로 주신 말씀이 아니다.
(김영환님의 글을 옮겨 보았읍니다.)
한국교회가 다는 그렇지 않지만 돈 때문에 썩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번쯤 교회를 다니시는 분들이라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이글을 올리는 것이니 이 글을 읽으시고 화가 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댓글을 성경에 입각하며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읍니다.
진실로 진리로 사랑한다는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다는 안그래요~ 한... 99% 조금 넘게가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