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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여름 부모님께서 몬트리얼을 방문하셨을 때 제가 부탁했던 책과 더불어
딸려(?) 온 책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어디서 구하셨는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저 읽
어보라고 가져오신 책이었지요. 당시 제목만 보고 전 당연히 종교에 관한 이야기(때
론 종교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질 정도로 교리에 궁금증을 가지다가도, 또 때론 주춤
해지기도 하는데, 바로 이 책을 첫 대면할 때는 후자였지 싶네요.)인 걸로 지레짐작
하곤 한 동안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얼마 전에 우연히 읽을만한 책을 뒤지다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냥
어떤 책일까 궁금한 나머지 책꽂이에서 빼서 읽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첫 장에서부
터 이 책은 단순한 한 성직자의 신앙고백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난한 역사를 몸소 경
험한 한 인간의 회고록이라는 점이 가슴에 와 닿으며 내용들이 가슴에 은은하게 스
며들기 시작했습니다.
대개가 다 가난했던 그 시절, 누구나 다 억울한 마음을 가슴에 품고 한 많은 시간을
숨죽이며 지냈던 일제 치하였던 그 때부터 어린 김수환 추기경은 용감한 모습으로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며 이른바 ‘될 성 싶은 나무의 싹’을 보여주지요. 많은 위인들
이 그랬듯, 그분은 의협심이 대단했고, 참으로 솔직함에 거침이 없었던 학생이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분이 성직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와 과정이 흥미로웠는데,
그건 우리나라 순교 성인 중 한 분이셨던 그 분의 조부의 피가 추기경님의 내면에 유
유히 흐르고 있어서였을 수도 있었겠지만, 정작 본인은 어머니가 권하는 사제자의 길
을 피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번번히 실패(?)를 거듭하여 결국
사제자가 되었다는 고백에서는 참으로 진솔한 한 인간적 모습에 감동하게 되었답니다.
그건 보통 그 정도(?)의 자리에 오르신 분들은 자의든, 타의든 다른 이들의 눈을 생
각해서라도 그런 고백보다는 “이 길은 다름 아닌 나의 천직이었습니다.” 류의 고백
같은 것을 하실 거라는 저를 비롯한 대다수의 기대(?)를 저버린 지극히 인간적인
고백이었기에 말입니다.
대신 추기경님은 이리저리 어떻게든 그런 엄청난 멍에(?)에서 벗어나고자 고뇌하고,
또 고뇌한 흔적을 여러 곳에서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분은 우리나
라 최초의 추기경이라는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고 말입니다. 이 대목에서 사제자
가 되고, 말고는 한 인간의 의지에서라기보단 하늘의 뜻에서 비롯된다는 걸 또 한 번
진하게 깨닫게 되었답니다.
또 추기경님은 우리나라의 다사다난했던 근대 역사와도 동고동락하신 분이라고 할
만한데 그건 바로 그분이 일제 유학, 그리고 징병으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고, 고국
의 품으로 돌아올 때까지 겪었던 위험천만했던 시절에서부터 6.25 전쟁, 전쟁의 와
중에서 받았던 사제 서품, 거기에 5.16 혁명, 유신, 군사정권시절과 문민정부까지 이
모든 질곡의 역사를 직접 몸소 경험하셨고, 더욱이 그 가운데에 존재했었다 말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그러한 역사의 회오리 가운데에서 소신과 신념을 가지고 꿋꿋하게 위기를 넘
기셨는데, 그럴 수 있었음은 바로 그분의 합리적이면서 융통성 있는, 그러면서도 기
본적인 그분의 철학(인간사랑)에 힘입는 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려운 일
을 맞을 때마다 추기경님께선 안에서 울려 나오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셨고, 기
도로서 난세를 헤쳐나가셨고, 그 중에서도 오늘날까지 그분을 잡아주신 건 바로 다
름 아닌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인간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분명한 지향점을 둔 기도, 그리고 그것을 향한 염원이 바로 숱한 인생 역정의 순간
순간에서 빛을 발하고, 바로 살아 숨쉬는 ‘세상 속의 교회’의 수장으로서 든든한 한
몫을 했음을, 또한 인간에 대한 사랑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던 한 어른의 긍휼심,
선을 향한 평상심이 이 나라의 천주교인들의 귀감이 되며 면면히 우리의 역사가 되
었음을 발견했지요.
더불어 저는 그분의 순수하신 모습에서 신에 대한 확연한 믿음을 본 것 같고, 우리
들 모두도 원하기만 한다면 그분처럼 어떤 ‘하나를 향한 지향’에 의지하여 평상심을
지닐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김수환 추기경님의 인간
적인 고뇌를 진솔하게 드러낸 이 책을 통해 깨닫고, 배운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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