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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중국의 고전 작가의 작품을 몇 번 읽어본 적은 있지만 현대 작가의 작품을 읽어
본 건 아마 이 책이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중국 제 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중
국에서 꼽힌다는 “위화”라는 작가의 작품입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처음 몇 장을 읽어 내려가면서 이전에 분명 읽었던 책이다 싶었는
데 결국 끝장에 이를 때까지 그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고, 분명 이전에 읽었었던 건 확실
한데 그게 어디에서, 언제였는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해 낼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답니다.
신기하면서 또한 어이가 좀 없기도 하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내용을 다시 한 번 숙독한
느낌은 한 마디로 ‘너무 잘했다!’ 이었고, 세월에 따라 책에 대한 감상도 달라지니 이 참에
정말 좋은 책 한 권을 다시! 잘 읽었다~ 싶습니다.
이 소설은 중국의 전란과 문화대혁명 시대의 민초들의 고난과 부침을 낱낱이 비추는 중국
근대화의 대서사시라고 할 만한데, 이 소설로 위화라는 작가는 마침내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 했다고 전해집니다. 저 또한 이 책을 읽은 후 작가의 섬세하면서도 진솔한 필력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슬픈 이야기를 이렇게나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작가의 역량에 부
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소설을 읽어내려 가면서 우리들의 지난했던 근대사와 계속 비교할 수 밖
에 없었는데요. 그 이유는 역사적 배경은 고사하더라도 너무도 닮아있는 우리네 삶과의
유사성 때문이었습니다. 가난에 겨워 자식을 다른 집에 양녀로 보내야 했던 이야기는 비
단 중국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닌, 우리 또한 이와 같거나 비슷한 현실에 처했던 과거가
분명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돌아와 다시 가족들을 만났을 때의 감격적인 상
봉 역시 우리와 전혀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었고, 그 밖에도 참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비
슷하니 소설의 내용이 더욱 애잔하게 저의 가슴을 파고들었지요.
그리고 또 하나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는 예전에 제가 읽었던 또 다른 소설을 떠 올렸는데
그만 그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인 줄 모르고 주인공이 다른 곳을 배회
하다 돌아온 고향에는 이미 자신의 부모는 물론, 자신의 배우자와 자식들까지 다 저 세상
으로 가 버린 수 백 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는 내용으로 인생의 허망함을 일깨웠던 그 소
설이 이 소설과 대비되면서 계속 제 머리 속을 맴돌았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소설의 미덕은 우리네 인생에 있어 아무리 고달프고, 힘겨운 역경이 우
리를 굴복시키려 하더라도 그것에 맞서 용기 있게 순응하다 보면 다 ‘살아진다’는 단순한
듯 하지만 변함없는 진리를 우리들에게 상기시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목을 ‘사는’ 게 아닌, ‘살아간다’ 라고 붙인 건 아주 적확한 듯 하고 그 표현 자체가 이미
우리의 ‘살아감’이 아름다움과 강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한 편의 파노라마 라는 것을 아름
답고 서정적인 작가의 문체를 통해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겨졌고요. 또한 더불어 강
인한 슬픔이 아름다움으로 승화하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주인공 복귀
는 바로 우리네 보통 사람의 운명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겉으로 봤
을때 대단치 않아 보이는 인생일지라도 그 안에는 다 나름대로의 질곡과 애환이 서려 있
는 것이 사실이고, 이렇게 저렇게 운명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의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 이 소설이 한 인간의 비극적 삶을 유유한 강의 흐름처
럼 자연과 운명에 거슬리지 않고 도도히 흐르는 이미지로, 체념과는 또 다른 관조적 분위
기로 승화시킨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에 한 표를 던지고 싶은 것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