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생님의 북리뷰입니다.

김훈이란 작가의 깔끔하면서도 명료한 글을 좋아합니다. 그의 글에선 깊이 있는 말의 무게가 느껴져
좋고, 무게에 비해 군더더기가 없는 담백한 맛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의 글 속으로 빠져드는 경우가
대개이지요.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으니 나도 그처럼 그런 글쓰기를 할 수 있다면~ 하는
바램도 역시 가지고 있구요. 배우고 싶은 작가가 확실합니다.
지난 번 읽었던 그의 소설 '칼의 노래'에서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역시 그의 책 '남한산성'은 제 가슴
속에 꾸역꾸역 밀려드는 진한 아픔을 제게 안겨 주었습니다. 어떤 선택도 용이하지 않은 처지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끝이 보이지 않는 환란 속에서 죽음으로 삶을 견뎌내던지, 살
므로 죽음을 견뎌야 했던 민초들의 기구함들이 전혀 오버없이 적나라하게 실려 있었지요. 절망이 깊
어지면 그 뒤에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허무만이 깊어진다는 교훈을 유감없이 보여주면서 말입니다.
작가 김훈의 표현 그대로 저 역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어느 인물이 어떻다라는 판단 같은 건 아예 접
고 그 당시의 상황만을 바라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신의 소신에 따라 최선이라 여기는 지조를 지켜
내려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허무하지만 간곡하게 제 가슴을 때렸지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바로
사실 그대로 말입니다. 대책 아닌 대책을 세워야만 했던 당시의 비운과 높으면 높은대로, 낮으면 낮
은대로 견디어 낼 수 밖에 없었던 설움이 그대로 제게 다가와 가슴에 켠켠이 쌓여갔구요.
그랬습니다. 허무스런 말들이 부딪히며 무에서 유를 창출하기 위해 피나는, 억지스러운 노력을 기울
어야 했던 그 날의 소리없는 함성들이 여전히 제 귓가를 때리고 있었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그 당시
의 일들을 기록했다는 것 외에도 분명 미래의 한 귀감과 준비로서의 소용이 더 하다는 것을 또 깊이
깨달으며 바로 300 여 년 전의 그 일이 현재의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 숙고하
게 되었지요. 하지만 아직 전 정답을 모르겠습니다.
말의 허무성에 더해서 자신의 지조라는 것 역시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왜곡될 수도 있겠으며, 직접
몸으로 부딪히지 못하고 말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치욕스런 당면성의 허허로움에 대해서
도 다른 어떤 소설을 접할 때보다 절감할 수 있었다는 것 뿐, 끝 없는 절망의 늪에서 저 역시 탄식할
수 밖에 없었구요. 당시에는 절대절명의 순간들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단순한 역사의 한 장식으로
밖에 기억되지 못하는 무구한 더미 속에서 오늘 이 순간 우리나라의 상황은 또 어떠한 역사로 남을
것인지에 대해서 나오는 한숨만이 유일했다고나 할까요? 온고지신을 다시 되씹으며 깊이 숙고해
봤습니다.
아마 작가인 김훈 역시 오늘의 우리를 우려하여 이 글을 쓰게 된 건 아닐까란 혼자만의 짐작을 해 보
며, 또 사대부입네 하면서 격식과 당론에만 얽매어 있는 많은 위정자들에게 일침을 가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필연성을 상기해 보았습니다. 마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무식한 민초들이 오히려 실질적
인 앞으로의 전진에 힘을 보태고, 체면과 겉치레에 능한 양반들이 무용의 논쟁에서 자꾸 뒤로 밀려
나고 있음처럼 우리의 미래를 제시할 진정한 지도자 다운 지도자 상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게 되었습
니다.
허무의 집대성인 말잔치로만이 아닌 실질적으로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를 구해낼 수 있는 지도자를
꿈꿔 보며, 비극의 한 장을 장식했던 남한산성에서의 초라했던 일국의 왕과 그 식솔들을 비롯, 지도
자로 자처했던 무력한 무리들에게 솟아오르는 연민과 냉소 사이에서 제 자신 감정의 혼돈으로 한참
동안 스스로 무력해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책을 책으로만
읽을 수 없는 이러한 현실 또한 그 때의 상황과 별 반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면 너무 과민한 걸까요?
우리 모두 좀 더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각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 이런 넋두리를 읊어봅니다.






